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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무인보발(1998) (戊寅譜跋) 후손 철훈(哲勳)
무인보발(戊寅譜跋) 처음에는 성은 없었고 부족 이름을 사용하였는데 고려 광종(光宗)때에 과거제도를 시행하면서 백성들이 성(姓)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려 이전에는 상계(上系)가 어느 성씨나 분명치 않고 모든 성씨의 중시조가 고려 이후에 조상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성씨는 대부분이 외자이며 고대 국가의 이름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그 후손들이 나라이름을 자기네 성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씨는 부계사회(父系社會)의 상징이며 왕족이 성을 사용하자 사대부가에서 따라서 성을 사용하였고 오늘날에는 성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족보(族譜)는 고려 왕실(王室)에서 왕통(王統)을 기록한 왕대종록(王代宗錄)과 사대부가(士大夫家)의 가승(家乘)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대체로 체계적 (體系的)인 형태(形態)를 갖춘 족보는 조선 성종(成宗)때 간행한 문화유씨(文化柳氏) 성화보(成化譜)이며 오늘날처럼 혈족(血族)을 온전히 수록한 보첩(譜牒)은 명종(明宗) 때부터였는데 모든 씨족이 족보를 발행한 때는 숙종조 연간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성은 가문의 얼굴이었습니다. 때문에 존문대성(尊門大姓)에서는 가문 의식과 긍지가 대단하였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우리 조상들은 족보를 수찬(修撰)하고 소중히 보관하여 족보를 조상처럼 섬겼습니다. 그리고 한 세대마다 수보(修譜)를 하여 왔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이 지니고 있는 전통이며 자랑거리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농본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세상이 변하면서 사람들의 의식속에 가문 의식이 희미해지고 족보를 소중히 여기는 정신마저 없어져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서구문화를 부러워하고 우리 전통문화를 얕잡아보는 사회 기풍(氣風)때문 이겠지만 가문 의식이 희박해진 데다가 족보가 한자로 엮어진 데에 그 연유가 있습니다. 조상 대대로 써 온 한자를 버리고 한글을 국자(國字)로 삼아 한문교육을 소홀히 함으로써, 신세대들이 한자에 어두워 족보를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족보를 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 결과 조상이 어디서, 어떻게 살았으며 어떠한 일을 하였는지, 나의 근원이 어떠한지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족보를 구시대의 유물(遺物)로 여기고 관심을 두지 않은 경향이 있습니다.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서문(序文), 발문(跋文), 행장(行狀) 등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원문(原文)과 함께 실었으며 손록(孫錄)의 개인 공적사항도 우리말로 번역하였습니다. 본보(本譜)는 이런 뜻에서 한글판 족보라 이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집안은 一七○二年 임오시보(壬午始譜)를 간행한 이래로 參百年 동안에 一○ 餘 차례나 대동보를 수찬하였습니다. 지난 一九六八年 무신보(戊申譜)가 간행된 지 이미 三○○年이 지나 대동보를 편찬하지 않으면 면면(綿綿)히 이어온 전통이 계승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급격히 발전해 가는 산업사회에서 뿔뿔이 흩어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가 있는 것은 오직 조상의 내력이 담긴 족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각 문중회의 때마다 대동보 수찬의 여론이 비등(沸騰)하였으나 체계적으로 수단할 기구가 조직되지 않아서 미루어 왔습니다. 그런데 一九九六年 지남재(芝南齋) 시제(時祭)때 종친(宗親)들로부터 본 사업의 열의가 높아지자 一九九七年 三月 二十八日 종 회(宗會)에서 대동보사업을 의결(議決)하고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무인보(戊寅譜)는 다음과 같이 수찬의 초점을 설정하였습니다. 첫째, 족보가 단지 소중히 보관하고 모시는 책이 아니라 집안에서 아들딸을 가르치는 교본(敎本)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비문, 행장, 서문, 손록 등을 한글로 번역하여 원문과 나란히 등재하였습니다. 그래서 족보를 읽고 수록된 충효(忠孝)의 정신을 본받아 조상의 후손답게 충효를 실행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우리 집안 내력부터 알게 하자는 것입니다. 둘째, 누구나 가까이 두고 틈만 나면 읽는 족보가 되도록 엮었습니다. 모시는 족보에 서 읽는 족보로 그 위상을 바꾸었습니다. 후손된 이는 마땅히 책상머리에 꽂아두고 틈틈이 읽으면 옥천 조문의 내력이 저절로 알게 될 것이고 어린 아들딸에게 가문의 내력 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족보의 종주국(宗主國)입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특히 미국에서 한국 족 보에 큰 관심을 가지고 수집 보관하며 학문 연구의 자료로 삼고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 우리나라 족보를 본받아 자기들 뿌리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족보의 종주국이면서 오히려 족보를 잊고 심지어는 구식 늙은이들만의 것으로 접어버린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무인 대동보(譜) 수찬의 실무자로서 우리 종친들이 족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자는 작은 마음에서 위와 같이 서술합니다. 一九九八年 十二月 十日 후손 철훈(哲勳) 삼가 발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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